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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당 평론

<선무당 평론> 혜리의 연기력 논란

<선무당 평론> 혜리의 연기력 논란

 

혜리를 보면 <말괄량이 삐삐>가 떠오른다. <놀라운 토요일>에서 보여주는 깜찍하고 발랄한 장난꾸러기 혜리가 그렇다. 그런데 최근 <청일전자 미쓰리>의 주연을 맡으며 연기력 논란에 가슴 아프다. 물론 혜리를 잘 모른다. 광팬도 아니다. 어느 예능에서 ~하는 애교 한방으로 남심을 사로잡아 떠오른 아이돌 출신 연기자. 이렇게 보진 않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원조, 출신을 따진다. 어떤 분야든 정통, 제대로 배워야만 인정하는 분위기다. 지금의 실력이 아니라, 지나온 발자취로 평가하려는 이상한 편견이다. 대학을 따지고, 전공을 따지기 바쁘다. 그건 지금의 모습을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아이돌 출신에 대한 선입견은 생각보다 강하다. 평가는 더 혹독하다.

 

한국 관객은 약간 오버스런 연기를 좋아한다. 1990년대 홍콩느와르의 영향이 조금은 남아 있는 듯하다. 물론 시류는 오버 연기에서 덤덤한 연기로 바뀌고 있기는 하다. 그래도 아직은 오버스런 연기, 감정을 폭발하는 연기의 평가가 좋은 편이다. 그래서 허리우드 스크린에서 우리배우를 잘 볼 수 없긴 하지만. 그런데 혜리는 그런 폭발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에 적합하지 않다. 혜리가 높은 평가를 받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혜리가 연기를 잘한다는 말은 아니다. 노력만큼 성과가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연기 연습 좀 더 하라는 댓글이 많다. 모르긴 몰라도 정말 억울할 것이다. 혜리 성격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기성세대는 연기를 기술과 기교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연기는 연습하면 그냥 는다고 착각한다. 그럴까. 연기에 필요한 기술과 기교는 많지 않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발성이나 시선처리 정도가 거의 전부다. 물론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이정도야 그 많은 연기관련 학과와 연기학원, 그리고 연기 선생님들이 있는데, 뭐가 어려우랴. 또 혜리 자체가 영화과를 전동하고 있고, 아마 개인 연기선생님도 있고, 주변에 엄청 많은 조언자도 있을 것이다.

 

<배가본드>의 수지도 그런 느낌이지만, 혜리도 연기 연습에 핀트가 약간 어긋나 있는 느낌이다. 수지와 혜리는 둘 다 쓴소리를 듣고 있지만 좀 다른 원인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수지야 시간 있을 때 따로 논하든가 하고, 혜리에 집중하자. 혜리의 문제는 성격에 있는 듯하다. 개인적 생각으로 너무 성격이 좋아 연기가 안되는 듯하다.

 

어느 중견 여배우는 여배우와 결혼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까탈스럽고,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여배우와 함께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뜻이다. 화면 속 여배우는 하나 같이 예쁘고, 천사나 공주 같지만,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연륜이 묻어나는 자조 섞인 말이다. 배우는 그래야 한다. 섬세하고 예민해야 한다. 그래야 연기를 할 수 있다.

 

그런데 혜리는 너무 성격이 좋은 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혜리는 남 배려잘하고, 쿨한 성격이다. 거기에 성실하고, 열정적이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최상의 평가다. 그런데, 그래서 연기가 문제다. 마치 효리처럼. 그래서 이효리는 포기했다. 쿨한 척에 너무 익숙하여, 참는 것에 너무 익숙해지면 감정을 드러내는데 취약하다. ? 혜리는 감정을 잘 표현하는데, 이는 내면의 감정이 아니라, 상대를 위한 감정이다. 남의 마음을 읽다 자신을 잃어버린 케이스다.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에서 성격이 좋은 친구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남의 감정을 잘 맞춰주는 이들이다. 감정은 숨기다보면, 그렇게 익숙해지다 보면, 나중에는 무엇이 자신의 감정인지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다.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려운 여건에 버티다보면 감정도 무뎌지는 법이다. 원래 상처는 연기에 도움이 되어야 하지만, 이런 경우는 오히려 독이 된다.

 

베를린 여우주연상이 빛나는 배우 김민희. 그는 개발연기의 표본일 정도로 연기를 못하던 배우였다. 그런 그가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었다. 감정을 느끼고 그대로 표출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아픔을 느낄 줄 알고 그것도 매우 섬세하게, 표출할 줄 알고, 그것도 매우 절제되어 그런 큰 배우로 성장했다. 현재 김민희보다 연기 잘하는 배우는 거의 없다.

 

감수성을 글로 표현하는 이가 작가라면, 감수성을 몸으로 표현하는 이가 배우다. 감수성을 외형적으로 표현하는 장르가 코미디라면, 감수성을 내면적으로 표현하는 장르가 드라마다. 그것이 어떤 형태든,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하면 좋은 작가이자 배우가 된다. 문제는 바로 이 감수성이다. 이 감수성을 지도하는 연기지도자는 거의 없다. 아니 모든 예술 분야 지도자의 숙제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죽었다. 통곡하기도 하고, 멍하니 있기도 하고, 말없이 눈물만 흘리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하고, 무표정하게 쳐다보기만 하고.......

 

감정은 단편적이지 않다. 눈물에는 너무나 많은 종류가 있다. 감정을 어떻게 느끼고 전달하느냐 하는 것을 예술이다. 오버연기는 감정의 폭을 나타낸다. 그런데 향후 방향은 감정의 섬세함을 주목한다. 감정표현의 폭에서 섬세함으로 넘어가고 있다. 통곡하지 않아도 어깨 떨림 하나로도 충분히 진한 슬픔을 전달할 수 있다. <미스터 션샤인>의 이병헌을 보라.

 

관객은 배우의 연기를 통해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했던 낯선 감수성을 내면에서 발견할 때 전율한다. 그래서 배우에게는 감수성이 가장 중요하다. 슬프다와 같은 단순한 감수성이 아니라, 매우 세밀하고 디테일한 작은 떨림 말이다. 혜리에게는 이 감수성이 필요해 보인다.

 

미쓰리는 다르다. 마냥 행복했을 때 미쓰리와 뒤통수 맞았을 때 미쓰리와 사장이 되었을 때 미쓰리와 누명을 쓴 미쓰리는 다르다. 모두 멍청하고 답답한 미쓰리지만 다르다. 그 감정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감수성은 더욱 그러하다. 혜리는 같다. 주변도 문제다. 교정기라도 끼다가 빼던지 이런 외형적 변화라도 있었으면 좀 어땠을까 한다.

 

청일전자 미쓰리. /사진=tvN 공식 홈페이지

 

어쩌면 혜리에게는 연기 선생님이 아니라 마음을 털어 놓을 친구가 필요한지 모른다. 술도 먹지 않은 맨정신에 모든 걸 털어 놓을 친구말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추악하고 가증스러운 모습 조차도 보여줄 수 있는 친구. 꼭 친구가 아니어도 좋다. 화장을 지우고 맨얼굴 속 주근깨를 덤덤하고 자연스럽게 치부가 아닌 내 일부로 마주하기 바란다.(혜리는 주근깨 없다) 그렇게 마음을 툭 털어 놓는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감정을 토로하고, 그 감정을 소중히 했으면 한다. 최고의 연기 재료다.

 

혜리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코믹연기에 참 잘 어울려 보인다. 그런데 한국은 묘하게 코믹연기를 저평가한다. 그래서 싫을 게다. 혜리는 숨은 노력을 대중이 인정을 안해주니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게다. 너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말이라도 들어 주고 싶다만 연이 없으니, 걱정스런 마음에 끄적여 본다. 혜리야~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